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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스토리

백종원도 포기하고 말았던 사업 아이템

by 말풍션 2019.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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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원

출처: KBS2 <대화의 희열2>

요식업계 미다스의 손 같은 존재가 된 백종원에게도 실패의 아픔이 있었다. 그는 KBS2 <대화의 희열2>에 출연해 “어린 시절 허세 탓에 양복 차려입고 외국을 오가는 사업가를 꿈꿨고, 미국 건축자재 수입을 독점으로 하는 목조주택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IMF가 오면서 17억 원의 빚을 졌다”고 털어놨다. 동시에 그가 운영하던 쌈밥집에 채권자들이 몰려왔다고. 이에 백종원은 무릎을 꿇고 “남은 건 이 식당 하나인데 나눠 가져도 얼마 안 된다. 기회를 준다면 이 식당으로 일어나 빚을 꼭 갚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일은 못 잊는다. 가장 창피했다.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쌈밥집과 포장마차를 함께 운영하며 하루 4시간만 자면서 2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대패삼겹살'을 개발, 원조쌈밥집을 성공시킨 그는 이듬해 더본코리아 법인을 설립하며 본격적으로 외식 사업에 뛰어들었다. 현재는 손대는 브랜드마다 성공시키고 있다. 

 

윤정수 

 

출처: MBN <최고의 한방>

윤정수는 광어 먹이를 수입해서 파는 사업, 황토 비누, 만두 사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러다 퓨전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사업가로 성공하게 된다. 당시 월 4억, 연 50억의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했었다. 나아가 방송 프로그램 제작 업체에 지분을 투자했고, 패션과 의류 도소매업에도 진출했다.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금 10억 을 투자하고, 연대보증을 섰지만 회사가 망한 것. 결국 그는 10억이 넘는 빚을 지게 됐다. MBN <아궁이>에 출연해 보증을 선 이유에 대해 "복지재단 설립을 약속받고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MBN <최고의 한방>에서 "보증 빚이지만 '내가 도장 찍었으니까 갚는다’라고 했었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이어 “8억 보증 빚을 2년간 3억을 넘게 갚았다. 그런데 1년 반 동안 못 갚았더니 다시 8억이 됐다"며 “그래서 파산 신청을 했다”라고 절망적이었던 상황을 언급했다. 2017년 KBS2 <김생민의 영수증>을 통해 윤정수는 “빚의 95%를 갚았다”고 밝혔다.

 

신동엽

 

출처: KBS2 <승승장구>

신동엽은 무명시절 없이 단번에 스타가 됐다. 그러다 2005년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시작했지만 재정 문제로 실패하게 된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세계 최초로 특허를 획득한 다이어트 슈즈 ‘IXEX’로 사업에 도전한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신동엽은 무려 80억의 부채를 떠안게 된다. TV조선 <별별톡쇼>에 따르면 신동엽은 아내에게 빚에 대해 알렸고, 아내 선혜윤 PD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방송을 하라”고 조언했다고. 조언에 따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송에 올인한 신동엽은 금세 일어서게 된다. 서울 홍대의 건물을 128억 원에 매입해 월 4000만 원의 임대 수익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상민

 

출처: MBN <최고의 한방>

이상민은 혼성 그룹 ‘룰라’로 데뷔해 크게 성공한다. 당시 총 800만장 가량의 음반을 팔았고 일주일 만에 100만 장의 음반을 팔았다. 이후 프로듀서로 변신해 샤크라, 샵, 컨츄리꼬꼬를 성공시킨다. 그러다 69억이란 큰 빚을 지게 된다. 그는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를 통해 “어렸을 때 꿈이 부자였다. 음반 제작을 시작으로 좀 넓게 가보자 해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의류 사업을 시작한 후 수입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라. 이종격투기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다. 연 100억 매출을 기록했을 때 선수가 사망해 논란이 됐다. 그러다 부도를 맞았고, 그때 빚만 60억 정도 됐다"고 밝혔다. 인회생절차 없이 착실히 갚아나가던 이상민은 "올해 수입이 플러스가 됐다"며 "지금도 꿈만 같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발언에 '69여 억 원에 달하는 빚을 모두 갚았다'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이는 오보로 밝혀졌고 실제로는 일부 빚을 청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준

 

출처: MBC <사람이 좋다>

원조 꽃미남 하이틴 스타 김원준에게도 인생의 쓴맛이 있었다. 2002년 싱어송라이터로 대부분의 노래를 스스로 만들던 그는 자기만의 음악 세계로 빠져들었던 것. 모아놓은 돈을 모두 투자해 녹음실 스튜디오를 만든다. 한마디로 사장이 된 것이다. MBC <사람이 좋다>를 통해 김원준은 “아는 형이 ‘녹음실 쓸게’ 하면 그냥 ‘쓰라’고 했다. 계산은 나중에 한다더니, 결제를 안 하더라. 그러다 어느 날 보니까 빚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다”고 털어놨다. 녹음실은 부도 처리됐고 당시 그가 해결해야 할 빚은 6억 원이 넘었다고. 이에 들어오는 행사란 행사는 모두뛰었다. 지방의 작은 축제도 가고, 대형수퍼 사은행사장에서 노래했다. 그런데 그때의 실패가 김원준을 지금 교수로 만들었다고. 그는 “여러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게 됐다. 그러다 새롭게 실용음악과를 만드는 대학에서 교수 채용공고가 났다. 직접 원서 넣어 근무를 시작했고, 지금은 학과장이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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