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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들을 지금 그 자리에 있게 한 이유로 그들의 남다른 유년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라 밝힌다고 한다. 그들이 직접 밝힌 충격적이고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겪어야 했던 고난은 무엇이고, 그 고난을 극복해 지금의 자리에 있는 스타들은 누가 있을지 한번 모아봤다.
드류 베리모어
출처: 영화 <미스 유 올레디> 스틸컷
배우 드류 베리모어는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영화 의 아역으로 출연하며 전 세계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다. 하지만 그의 친부모들은 정작 딸을 사랑해 주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딸이 태어나기도 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났으며, 어머니는 딸의 인기에 취해 파티와 알코올에 중독되어 딸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여섯 살의 소녀가 대중과 매스컴의 관심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려워 9살엔 술을, 10살엔 마리화나를, 12살에는 코카인에 손을 대다 14살엔 결국 자살 시도까지 하게 되었고, 10대 시절부터 재활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다행히 드류 베리모어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소파이 로렌을 만나며 방황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활발한 배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잭 니콜슨
출처: 영화 <디파티드> 스틸컷
할리우드 대표 연기파 배우로 손꼽히는 잭 니콜슨의 유년기는 다소 충격적이다. 잭 니콜슨의 어머니는 과거 쇼걸이었고 아버지는 정확하게 누군지 모른다고 한다. 18살이었던 그의 어머니가 니콜슨을 낳았고, 너무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은 딸을 대신해 니콜슨의 할머니가 그를 자식으로 길렀다. 이에 잭 니콜슨은 할머니를 어머니로, 어머니를 누나라고 불렀던 것.
이 사실은 과거 1974년 ‘타임’ 지를 통해 밝혀졌고, 무려 30여 년이 지나 이 진실을 알게 된 니콜슨은 “연기가 좀 되는 집안이군”이라는 혼잣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어머니와 할머니는 모두 사망한 뒤라 매우 놀라운 일이지만 심리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우디 해럴슨
출처: 영화 <충격과 공포> 스틸컷
영화 <헝거게임>이나 <우 유 씨 미>에 출연하며 우리나라에서도 얼굴을 알린 배우 우디 해럴슨은 불우한 가정사를 갖고 있는 스타로도 유명하다.
우디 해럴슨의 아버지 찰리 해럴슨은 청부 살인업자였다. 처음엔 곡물거래상을 살해한 죄로 복역했고, 그땐 성실한 수감 생활로 15년형을 받고 5년만 살다 나왔다고. 이후 두 번째엔 마약밀매상에게 25만 달러를 받고 텍사스주 지역 판사 존 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우디 해럴슨의 아버지는 수감 중, 2007년 콜로라도 교도소에서 6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에 우디 해럴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가 7살일 때 이혼했고, 감옥에만 오래 갇혀 지낸 아버지를 우디 해럴슨은 단 한 번도 좋은 감정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살인범의 아들이란 멍에가 오랫동안 그의 꼬리표였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버지가 남긴 상처를 씻어낼 수 있었던 데에는 어머니의 지극정성이 있었다고 밝히며,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늘 표했다.
샤를리즈 테론
출처: 영화 <롱샷>스틸컷
미모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배우 샤를리즈 테론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어린 샤를리즈 테론과 그의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했고, 그러던 어느 날 이를 보다 못한 그의 어머니는 참다못해 총으로 남편을 쏘게 된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본 샤를리즈 테론은 충격이 컸지만, 두 모녀를 괴롭혀온 아버지는 그에게 악마와 같았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이 사건으로 경찰에 체포되지만, 정당방위로 풀려나게 되고 이 사건으로 모녀는 더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2003년 영화 <몬스터>에서 여성 연쇄 살인범인 에일린 워노스를 연기했을 당시, 샤를리즈 테론은 자신의 힘든 과거를 회상하며 “내 인생보다 더 힘든 삶을 산 그녀의 인생을 연기해 과거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라고 고백한 바 있다.
짐 캐리
출처: 영화 <덤 앤 더머 투> 스틸컷
‘코미디 영화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배우 짐 캐리의 웃음 뒤에는 남다른 아픔이 존재한다고 한다. 짐 캐리가 15살에 회계사였던 아버지가 갑작스레 실직을 하며,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고. 엎친 데 덮친 격 그의 어머니 건강이 매우 안 좋아졌고, 이에 짐 캐리는 아픈 어머니를 위해 웃음을 주려고 코미디를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 전원이 들어와 일을 한다는 조건으로 타이어 근처의 조그마한 방을 얻었고, 그의 식구들은 모두 타이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짐 캐리는 기술이 부족한 탓에 공장 수위와 심부름꾼으로 일을 하다 코미디언의 꿈을 이루기 위해 15세라는 나이에 아마추어 코미디언으로 어렵게 활동하게 된다. 긴 무명생활을 보내던 짐 캐리는 아버지에게 천만 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아버지는 아들의 성공을 보기 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결국 짐 캐리는 16세의 어린 나이에 성공했고, 20세에 TV 무대까지 진출해 어려운 집안을 다시 일으키게 된다.
니키 미나즈
출처: 니키 미나즈 인스타그램
가수부터 배우까지 다양한 재능을 갖고 있는 니키 미나즈는 고향인 트리니다드 토바고를 떠나 미국 뉴욕에서 거주하게 된다. 이민 생활이 힘들었던 탓인지 그의 아버지는 마약과 술에 중독되었고, 그로 인한 화를 가족들에게 풀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니키 미나즈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어머니와 우리 가족은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물리적,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며 우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니키 미나즈와 그의 오빠가 친구 집에 놀러 간 사이 아버지는 홧김에 집에 불을 지르고 만다. 집에 갇힌 어머니는 혼자 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실패하고 겨우 탈출했다고 한다. 니키 미나즈는 이 날의 기억을 악몽과도 같다고 밝혔다.
오프라 윈프리
출처: 오프라 윈프리 인스타그램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이자 20세기 가장 부자인 흑인계 미국인으로도 꼽힌 오프라 윈프리는 듣기 힘들 정도의 참담한 과거사를 이겨내 지금의 자리에 위치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1954년 사생아로 태어났고, 당시 오프라의 어머니 나이는 고작 18살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느라 바빠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던 오프라가 9살일 무렵, 집에 드나들던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삼촌에게도 성폭행을 당한다. 14살에는 미혼모가 돼 아들을 낳게 되지만, 아들은 2주 후 죽게 된다. 이후 아버지와 살게 되면서 오프라는 안정을 되찾고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부와 토론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아픈 과거를 잊게 된다.
이후 우연히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되며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지역 뉴스 공동 진행자가 됐고, 대학교 4학년 때는 볼티모어의 방송국 뉴스 앵커로 데뷔한다. 하지만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진행으로 앵커에서 해임되고, 방송국의 제안으로 토크쇼를 진행하게 되며 인생일대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된다. 오프라 윈프리의 능수능란한 진행으로 토크쇼는 큰 인기를 끌었고, 전미 최고의 토크쇼로 자리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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